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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시
mseoyeadb 2006/08/08, 조회수 : 5152
산은 높아서 하늘을 뚫고      강은 깊어서 바다에 닿는다       ―「月刊書藝」誌齡 300號에 붙여 李 根 培(前 韓國詩人協會 會長) 백두대간이 솟는다 오랜 역사의 등뼈를 세워 붓을 잡으면 산이 되고 일월연(日月硯)에 먹을 갈면 강물은 넘쳐흘러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천만가지 꽃이며 짐승들이 뛰어 논다. 먼 선사부터 이 겨레 바위에 만물의 형상을 새기고 무덤 속에 삶의 풍속을 채색하더니 광개토대왕비, 진흥왕순수비 우뚝 서서 하늘의 용이 조화를 부리게 하고 땅의 범이 포효하게 한다. 보라! 저 역사의 줄기 구비 구비 글과 글씨와 그림으로 찬란하게 문화를 꽃피우던 큰 봉우리들 솔거(率居) 김생(金生) 최치원(崔致遠) 탄연(坦然) 이암(李핶) 이용(李瑢) 한호(韓濩)  윤순(尹淳)  김홍도(金弘道) 장승업(張承業)  정약용(丁若鏞) 박제가(朴齊家) 김정희(金正喜)...... 하늘의 별처럼 영원한 빛을 부리는 그 신(神)의 솜씨, 천둥 번개치는 혼불을. 어찌 이 뻗어가는 산맥을 멈추겠으며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마르게 하랴 「月刊書藝」가 어둠을 깨치는 불을 밝히니 누웠던 붓이 일어나 춤을 추고 가물던 연전(硯田)에 물길이 대어 여기서 이 땅의 서예문화가 새 지평을 열어왔구나. 이것이 금자탑(金子塔)이구나 우리의 한 시대를 갈고 닦아온 선필(善筆) 선화(善畵)들이 내놓은 보석처럼 빛나는 역작들이 쌓이고 쌓인 지령300호! 우러러보니 눈부시구나 오! 뻗어가라 산맥이여 더 멀고 먼 지평을 열어 오랜 세월에도 깎이지 않는 불멸의 비림(碑林)으로 우뚝 서라.    書  藝  頌       ― 「月刊書藝」 300호 맞이에 崔  勝  範  (全北大 名譽敎授) 소인(素人)의 노래란들 좋아서 부르는 노래 어린시절 먹향기 속 서산(書算)을 접고 펴고 분판(粉板)에 괴발개발 붓질도 한 저날 그립다 부르는 노래 어느 날이었던가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추구》의 대구 한 장 백로지에 그려 냈지 사랑채 윗목 벽에 붙여 놓자 마을 어른들 추임새였어 그러나 붓글씨와의 연은 길지 못 했어 학교 공부 들어서며 연필 철필 만년필 볼펜 사랑으로 익히던 할아버지의 《소학》과도 멀어진 나날이었다네 우리의 것에 철 좀 든 뒷날에야 ‘시·서·화’ 3절의 선인들 그 예술의 꽃 시를 읽고 글씨를 읽고 그림도 읽는 시간이면 한 마음 어른들의 풍류가 묵지비출(墨池飛出)의 향기였다네 옛시조 40수 한역의 《소악부》(小樂府) 그리고 《동인론시》(東人論詩》·《관극시》(觀劇詩) 읽으며 우러른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방대도>(訪戴圖)<묵죽도>(墨竹圖) 행·초서도 엿보자니 이 어른 시정(詩情)도 서심(書心)도 화의(畵意)도 묵지비출의 꽃이었어 시마(詩魔)에 쫓기다가도 묵지 묵향 그리우면 주장문(朱長文)의 《묵지편》(墨池編) 우리 《해동명가필보》 생각 몇 몇의 법첩(法帖) 비첩(碑帖)에도 솔깃한 애정이었지 일소(逸少) 왕희지(王羲之)를 들어 서성(書聖)이라 일컫지만 우리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서성으로 우러러 또한 마땅하지 않을까 이 어른 창경고기(蒼勁古奇)한 추사체 온 서예계의 빛 아닌가 추사는 서예 뿐인가 경학 금석학에도 울연한 학자로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 추사의 여섯자철학은 시·서·화 예술 창작의 앞날 길이 진리이려니 예술과 기교의 예능과는 다른 것 예서(隸書)에 대한 추사의 명언 ‘번드르한 모습이나 시정의 기풍은 걸러내야 한다. 청고고아(淸高古雅)한 뜻이 없이는 손에서 나올 수 없다. 가슴 속 청고 고아한 뜻은 또한 가슴 속에 문자향 서권기가 있지 않으면 팔뚝 아래와 손가락 끝에 드러나 피어날 수 없다’ 이 말씀 비단 예서 뿐이겠는가 공교히 체법(體法)을 좇았다 해도 철적도인(鐵笛道人)의 글씨야 속재(俗才)일 뿐 추사는 《제석파란권》(題石坡蘭卷)에서 이런 말씀도 하였지 ‘사란(寫蘭)에 비록 9,999분에까지 이를 수 있다해도 그 나머지 1분은 인력(人力)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또한 난을 침에 있어서 뿐이겠는가 예도 만고의 진리려니 한글의 궁체 고활자체 언간체에 매달려 ‘호수의 거북은 천 년을 살아야 한 치 위의 연잎에 앉을 수 있다’는 교훈으로 마천철연(磨穿鐵硯)하여 ‘수(守) 쭭 파(破) 쭭 이(離)’ 한글서예의 새 경지를 이룩한 서예가 평보(平步) 서희환(徐喜煥)은 예도의 본을 보인 행보(行步) 였어라 시·서·화의 길 우러러 좇고자 해도 한 소인의 노래일 뿐 어린시절의 분판 모필 못다한 아쉬움 그리울 때면 창창한 《월간서예》의 숲길에 들어 나홀로 소요음영(逍遙吟詠) 달랠 밖에 《월간서예》 300호 맞이에서 간절한 노래인 것은 우리 서예의 뿌리 깊은 꽃과 열매를 3,000호 30,000호 가멸차게 담아내어 서예의 풍류정신 널리널리 일깨워지라 한 가슴 바라고 비는 소인의 마음 간절함일레 축수함일레 천세 만세 만만세 序詩 祝月刊書藝三百號 尹  義  遠 _ 漢學者 鎬援崔光烈社長  海州后人湖南生 遠志懷臆  壯圖發足 已過桑海三變之日     遂至洛陽紙價之貴 探先賢之金石遺蹟   傳後生之學習軌範 身從末業   功倍文事 立韻事之中道   定評林之正論 紀事擬古春秋之筆法   鑑定正如衡權之平準 邪正分立   眞僞露見 口讀者無以爭議   目見者不必贅言 乃薦隱才之立地   卽戒曲學之俗才 謹祝貴社之大昌   末附不М之拙吟 始自濫觴學海洋   士林白戰競津場 書圖氣品評高下   詩賦情懷論短長 金石拾遺傳古法   紙毛秘術示新方 一時韻事開言路   願爲斯文泰斗望                 丙戌 六月 二五日 漆原後人  尹 義 遠  吟書 호원 최광열 사장은 해주 최씨 후손이며 호남태생이다. 원대한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장엄한 계획을 출발하였다. 이미 강산이 세번이나 변하는 시일이 지나서야 드디어 낙양의 종이 값이 되는 것에 이르게 되었다. 선현들이 남긴 금석의 필적을 찾아서, 후세인들의 학습 법첩으로 전해주니 자신은 상업을 하였지만 공로는 학문에 종사한 곱이 된다. 시문서화의 중도에 서서 여러 평론서의 정론을 정하였으며, 사실 기록은 공자의 춘추 쓰는 필법을 모방하였고 감정은 저울대에 수평과 같이 하였다. 사곡과 정직을 나누어 정립해 놓고 진실과 거짓을 드러내어 보게 하였다. 입으로 읽는 사람들은 시비의 논의가 없고 눈으로 본 사람들은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에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있는 재능인들의 설 곳을 추천해 주어 바로 정도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살이를 잘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게 하였다. 삼가 귀사에 크게 번창하기를 빌며 끝에다 나의 졸열한 시를  첨부합니다. 문학의 시작에서 학문의 집정소를 이루어 시서화하는 선비들이 실력을 겨루는 장소가 되었도다. 글씨와 그림의 품격에 높고 낮은 것을 논평해 놓고 시문의 감정이 길고 짧은 것도 논의하였지요. 종정, 비갈에 남아있는 것 수습하여 옛날 서법을 전달하였고, 종이와 붓 사용의 비법에 새로운 법도 보게 되었도다. 한시대 시서화인들의 언로을 열었으니 원컨대 이 시서화계에서 높은 신망을 받으시요.                                                                    칠원후인  윤 의 원  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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