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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서예포럼』 -서단을 위한 제언-
관리자 2011/08/10, 조회수 : 2074

한국의 서단은 안개 속 빨강 신호등, 비상등을 켜라
포럼주간 송민 이 주 형

교차로에서 운전을 하고 가다가 황색 신호를 인식하였지만 정지선 앞에 정지할 수 없어서 계속 진행하다가 황색 신호가 끝날 때까지 교차로를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이때 황색 신호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끝난 지점까지 차량이 있던 구간을 ‘딜레마 구간’이라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간이다. 한국서단이 딜레마구간에 빠져 빨간 신호등에서 헤메고 있다. 사고가 났다.
한국미술협회에 동승하여 주행하고 있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은 요즘 수상작품의 오탈자 문제로 방송언론이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곤경에 처해있다. 이는 필자 역시 대상작품의 ‘?’자에 대한 미협의 감수결과에 문자학적인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이 문제가 인터넷 서예세상에 처음으로 제기 된 것은 5월 24일 수은이라는 이름으로 미협에 정식 제기되고 나서 부터이다. ‘힐’자에 대한 이의가 처음으로 제기된 후 25일 미협측의 답변이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29일에는 필자가 “힐자에 대한 감수위원님의 답변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였으나 본질적 문제를 회피한 채로 마찬가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 감수위원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김대현, 허호구(한학자 2인)과 이정도 심사위원장, 이종선 한글분과 위원장, 김주익 1차심사위원이었다. 감수위원 구성도 정작 최종 결정권자였던 3차 심사위원들이 모두 배제된 것도 이상한 일이다. 계속해서 대상과 최우수상 작품에 대한 서단의 이의 제기로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협은 6월 9일 시상식을 강행하였다. 이에 또 다시 여론이 들끓고 TV와 신문지상에 공개되자 그제서야 6월 21일 2차 감수회의를 열었다. 감수회의에서는 최우수상의 탈자만을 문제 삼아 賞을 취소하고 대상작품의 힐자에 대한 감수는 형성문자 ?에 대한 구체적 답변 없이 또 다시 “문제없음”이라는 감수의견을 제시하였다. 누가 참석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허호구 김대현 감수위원 이름으로만 발표하여 3차 심사위원들의 의견이나 서예분과 등 정작 문자학을 기본으로 하는 서예인들은 숨어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6월 25일 미협의 서예분과위원장(선주선 원광대 교수)이 서예비평학회에서 “오자가 맞다. 이를 예술적 차원의 연장선상에서 논의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은 그나마 서예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미협내의 복잡한 세력이 존재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이는 서예의 본질인 학문을 무시하는 처사로 추후라도 서예사에 오점으로 남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가 지리멸렬한 것은 현재 미협 내 몇몇의 비뚤어진 양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잘못된 서예관에 의해 일어난 일이며, 무모한 일로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사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하루빨리 해결하기를 촉구한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미술협회나 여타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이지만, 한해가 멀다하고 공모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지겨울 정도로 서예인들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서단에 처음으로 황색등이 켜진 것은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1922-1944)에서 서예가 미술로 종속된 일이다.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1981), 한국미술협회시기 (1982년~현)까지 미협에서 서예분과가 독립하지 못하고 미술인들의 키(key)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서예에 대한 발전을 기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예 정체성의 훼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 시점은 이미 빨강신호등이다. 아직도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다.

서단의 독립 실패로 두 번째 교차로에서 황색등이 켜졌다. 1989년 서예가 미협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을 시도하였지만 몇몇의 기득권싸움으로 인하여 독립이 실패한 일이다. 서단의 분열로 시작된 힘의 분산내지는 세력다툼은 단체의 부실 운영과 自 團體로의 회원확보를 위한 경쟁으로 치달았다. 그것은 곧 수준미달의 초대작가 양산은 물론 교육·창작·전시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곧 대중의 서예에 대한 외면으로 나타났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서단 운영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있다. 빨강신호등이다.
 
세 번째 교차로에서 공모전의 확산으로 황색불이 켜졌다. 전국적으로 공모전을 개최하는 것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그 중에 많은 대회에서는 심사위원들과 운영자 측의 작품 모으기와 담합으로 작품성은 뒷전으로 한 채 나눠 먹기식 심사를 하여 매년 이런 저런 대상작가가 만들어진다.  우수상, 특선, 입선 등의 수상을 거쳐 여기에서 ‘작가’라는 ‘證’을 받는 사람이 수백 명이 생산되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붓을 잡은 사람은 모두 작가인데 누가 깊이 있는 공부를 할 것이며, 어느 것이 서예요, 무엇이 서예작품인가? 누가 학생이 되고 누가 스승이 될 것인가? 정화가 필요하다. 변별력이 없는 서단은 이미 빨강불이 켜졌다.

네 번째 종착지를 목전에 둔 교차로에서 황색등이 켜졌다. 청소년 서예교육의 실종으로 미래 서예에 황색불이 켜졌다. 사회에서의 서예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지 못하자 청소년들이 붓을 놓고 있다. 이제 일반 서실에는 2-30대의 청년, 10~20대의 청소년들이 없다. 40대도 귀하다. 서단에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교육프로그램의 개발내지는 교과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10년 내에 서예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예인 들은 직업으로서의 삶이 보장되기 어렵다. 서단의 젊은이들 이라고는 대학교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 전부이다. 서예인구의 고령화이다. 빨강불이 켜졌다.     

이제 비상등을 켜야 한다.
무조건 삼 단체 사단체장은 이 문제를 숙의하되 지속적인 만남으로 서단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건 없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첫째, 공모전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둘째, 단체별 자정운동을 통하여 쇄신운동을 해야 한다.
셋째, 단체별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서예를 통한 이벤트로 대 국민홍보를 하여야 한다.
한국서화, 엄밀하게 말하면 서예와 문인화는 100년 동안 학교교육에서 배제된 지 근 1세기가 된다. 서양화와 동양화가 미술대학이나 예술대학에 속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할 때 서예나 문인화는 학교교육에서 제외되어 도제식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동안 생존경쟁으로 어려운 환경을 헤쳐 오늘날에 이르렀으나 그 폐해 또한 심각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서단이 지혜로운 판단으로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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