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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관전평
mseoyeadb 2005/03/03, 조회수 : 5433
농산관전평- 三人行에 必有我師라 했으니 (제주에서의 서화삼인행전) 정  충  락 (서예평론가) 1. 서언에 예술은 혼자만의 精神生活을 형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미술쪽에서는 이렇게 혼자서 하는 마음의 세계를 더러는 팀을 구성하여 전시를 하는 것이 혼자 보다 오히려 더 흔하다. 그것은 개인전과 그룹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룹전을 줄이면 개인전이고 개인전을 모으면 그룹전이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은 연극이나 음악이나 역시 개인과 그룹이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행사의 내용이 문제이지 행사 그 자체는 언제나 같은 것이다. 시류에 따라서 서예술을 하는 작가들의 모임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인간적인 교류에 의하여 더러는 그룹으로 짝을 지어 전시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간혹 만난다. 지난 2월 19일에 제주의 한경면 楮旨里에서 있었던 書畵三人展도 그러한 의미에서 서로의 交遊에서 일구어낸 하나의 문화적인 성과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마침 이들 세 작가(조종숙, 민이식, 현병찬)는 북제주군의 문화마인드에 의하여 조성된 예술인의 마을에 함께 입주해 살고 있는 처지여서 보다 쉽게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행사는 북제주군이 주관하는 연중행사인 들불놀이축제와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행사여서 더욱 그 의미는 크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규당(조종숙) 선생의 예술세계는 단아함의 극치와, 계정(민이식) 화백의 문인화세계는 문인화의 현대적인 해석의 절정에다, 한곬(현병찬) 선생의 한글정신이 잘 어울리는 형상적인 놀이는 멋진 한판 전시행사로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번 전시 행사장에는 일본의 화랑관계기관인 미술세계의 한국담당 부장인 야기하시 요시오(八木橋善雄)씨가 참석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계정 화백의 문인화에 대한 소견을 매우 간략하게 평가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문화적인 향기는 제주도민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흠상해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들불놀이의 축제현장에도 참석했는데, 체감온도 영하 40℃의 혹한 속에서도 신나는 불놀이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火力이 있었다. 이제 이러한 배경을 안고 펼친 저지리 예술인마을의 서화삼인전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2. 행사의 의미 예술인마을의 예술인들이 펼치는 전시가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안고 전시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이기 때문에 전시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별스런 의미를 찾는 것이 이상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북제주군의 문화행사인 둘불축제와 무관하지 않은 행사이므로 이러한 계획이 오래전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느닷없이 삼인전 어떠냐에 초점을 대고 작업을 한 것으로 살펴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예술인들이 살고 있는 예술인마을에서 말 그대로 예술인들이 펼치는 전시행사는 당일의 정경으로보아 근래에 보기드문 대형행사였음이 잘 드러난 것이었다. 관람자의 숫자와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들이 서울에서 펼친다해서 그렇게 호화판의 명사들이 참석하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작품의 배열이나 방식 같은 것은 별개로 치고 모여든 명사들만으로도 잔치 분위기의 조성에는 한 점 모자람이 없었다. 한국미술협회의 이사장단 거의 전원이 참석했고, 해당 지역의 군수, 교육장, 서예계의 유명인사와 그 관계자들, 보도기관의 취재열풍, 서화전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연출한 예는 근래에 보기 드문 진풍경이었다. 그러한 것만으로도 전시행사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가히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행사는 서로가 공감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가장 우선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행사를 펼친 한경면 저지리는 그 곳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오지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는데, 서화예술의 힘이 그렇게 초 호화판의 전시회를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 세 작가는 서화단에 이미 정평이 나있는 명사들이므로 새삼스럽게 작품세계가 어떻다는 등의 접근은 피하기로 하지만, 외국인이 본 우리의 서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전형의 글씨란 전통을 숭상하고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규당 선생의 단아한 서사솜씨는 언제 어디서 만나도 정겨움이 배어난다. 계정화백의 현대적인 문인화는 그야말로 재미를 뛰어넘은 또 다른 재미가 거기에 있다. 이에 대하여 앞서 소개한 야기하시 요시오씨는 말하기를 “일본에는 문인화가 존재하지 않고 남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계정화백의 문인화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구사하고 있는 순수한 한국식의 문인화로 배울 것이 많은 작품세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야기하시 씨는 그림 이외의 한자서예라든가 한글서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전통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대책없는 현대성 제시에 대한 수용의 한계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데에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지 않겠느냐 이다. 누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작품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경우 지나치게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행사장에서 나온 명언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阿附는 하면 할 수록 좋다”라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아부는 무턱대고 하는 아부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공통점이 없는 세 작가의 동시다발적인 작품전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예술의 바른 맛을 구분하여 살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화합과 상생의 현실적인 실천방안이란 이런 것에서 찾아진다고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전체에 깔려있었음을 이해하게 했다. 3. 조형의 재미 누가 쓰든 누가 그리든 작품은 화면에 깔리게 마련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아부든 사실이든 보는 사람의 잣대에 의하여 저울질 당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때에는 신중을 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왕에 하는 작품이면 언제나 머리맡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 제대로 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不問可知인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제작기간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기획기간이 짧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남에게 좋게만 보이게 하려는 생각보다 누구나 보고 즐기게 한다는 것이 바탕에 깔려있다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규당 선생의 서흔은 앞서 설명을 했듯이 단아의 극치이다. 이번의 경우는 대개 남의 글을 가려 썼는데, 한글을 비롯하여 漢字, 그리고 국화 몇 송이를 그린 문인화까지 거의 망라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큰 발견이었다. 작가가 문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그림으로 하고 싶은 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리거나 쓰는 작가의 고유한 자유인데 규당 선생은 그것을 실천한 것이다. 계정화백의 좌충우돌 거침없는 붓놀림은 문인화를 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전통의 화조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것이라든지, 문양화 하고 있는 현대식 그림의 전개와 산수의 시원스런 필치는 이것이 문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운필의 다이나믹한 맛의 제시는 문인화의 시간적인 여유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며 생각의 펼침에 동원되는 자료의 다양함을 알게 하는 부분이었다. 한곬 선생의 한글이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맛도 분위기에 가세한다. 누구나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대성을 전제로 지나치게 뻗고 있는 장획에는 찬성을 할 수가 없지만 “길”에서 만난 표현의 활달함은 제대로 걸러낸 것으로 보였다. 원래 정통의 한글을 주무기로 한 것이므로 자신의 주무기에 더욱 충실한다면 더 이상의 효과도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전문이라는 용어를 잘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는 부분이다. 예컨대 이봉주 선수에게 마라톤을 하지말고 역도를 하라고 한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것인가와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박찬호에게 야구를 하지말고 탁구를 하라고 한다면 연봉 수백만 달러의 대형 선수가 되었을 것인가와 같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가 체질에 맞는 전문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계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에다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전문과 다소 유리된 듯한 쪽의 것을 접목하려면 일정한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객관적인 검증을 말하는 것인데, 정점에 오를 때까지는 언제나 객관적인 검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싶다. 전체를 살펴보면 이번 행사를 위하여 느닷없이 창출해 낸 흔적이 역력하다. 작품은 좋은 것을 해야 하고 생각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에 가장 적절한 것은 18번이 제일이다. 남들이 무어라 하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내용이면 그 작가의 색깔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조형언어의 전달이 쉽다는 것이다. 필자의 화두는 언제나 한결같다. 즉, 글씨 잘 쓰고 못쓰는 것은 팔자소관이지만, 무엇을 쓰는 것인가는 철학의 문제이다. 이들 세 작가가 찾이하는 예술계에서의 비중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전시된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면 나름의 고민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한 작가는 긴장 속에 자신의 조형세계를 내걸고 있으며, 한 작가는 누가 뭐라고 하든 콧노래를 부르고 있고, 또 한 작가는 내 배 째라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중요한 작품전을 통해서 이렇게 재미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들 작가의 소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거든 하라, 이 말은 성경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당연히 이는 종교적인 배경에 의하여 생긴 말이지만, 예술계에서도 할 수 있거든 하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라. 그것이 작가들이 수행해야할 소명이라고.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닌데, 이들 세 작가는 무난하게 자신들의 소임을 소화해 낸 것으로 모두는 이해를 하게된 것이다. 4. 마치며 긴 말로 설명하기보다 짧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긴 말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짧은 말은 이것과 저것은 좋다로 끝을 내야 하기 때문에 객관성의 결여가 생겨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작품을 보고 분석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평가는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쓰는 입장에서는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보는 입장은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므로 별도의 부담이 자리하지 않는다. 작품도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평의 내용도 문자로 기록이 되는 것인만큼, 이에 대해서는 상호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예술에 관한 의견은 형상적인 표현의 의견제시와 문자를 이용한 언어적인 의견제시가 있는데, 그것이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좋은 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문화적인 향기가 끝내 문화적 발전의 자양이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남의 작품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위안을 받는다는 평이 나와야 작가들은 비로소 安堵하게 되는 것이다. 삼인행, 거기에 나의 선생이 한 분은 계시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번 세 작가의 한바탕 잔치는 그야말로 서예를 하는 작가나 문인화를 하는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제작기간에 따른 문제와 함께 작품의 내용선택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릇 작품을 통해서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작가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감동을 하게 된다면 더없이 훌륭한 작품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을 것이지만, 옥에도 티가 있게 마련이다. 전시 행사의 분위기에 맞는 내용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이번의 행사를 통해서도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작품은 값비싼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언제나 내 머리맡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이 가장 비싼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해 두고자 한다. 그리고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에서 펼친 이번의 행사는 4월 그믐께까지 장시간에 걸쳐서 하는 것이므로 더 많은 사람들의 감상을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끝으로 이 세 작가의 멋진 전시회를 본 소감을 다음의 칠언절구 한 수에 담아보았다. 짧게 하는 평론이란 이럴 수도 있다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書畵三人遊一堂, 濟州藝術照陽光. 是如筆跡連持續, 相互尊崇發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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