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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작가·고암 정 병 례
mseoyeadb 2005/07/08, 조회수 : 5612
표지작가·고암 정 병 례 領域을 허물고 멋진 藝術品으로 ·고암 정병례 선생의 전각예술· 인간본성의 행위예술이 새김질이다. 이의 등장은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기위해서 였다. 지금도 그대로다. 그 새김질의 결정체가 인장인데 그것이 인간사회의 信標로 등장한 것이다. 고암(古岩) 정병례(鄭昺例) 선생의 전각예술은 남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전각예술이란 예술품에 사용하는 信標인 도장을 말하는 것인데, 그 圖章, 또는 印章이라고 하는 작품의 제작에 대한 생각의 틀을 현대에 와서 바꾼 작가가 바로 고암 선생이다. 이는 인장의 역할과 기능을 함께하고 있던 것을 역할에다 중점을 두게 함으로써 보다 본격적인 예술품으로 입장을 확보하게 된 것이기 그 이유이다. 古典에서 만나던 전각이 아니고 지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한 부분에서 고암 선생의 예술관이 남과 다르다고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선 표지에 등장한 ‘붕어는 바다를 모른다’라고 하는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면 앞의 설명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새겨낸 도장은, 반드시 그 도장이 기능하는 역할이 있게 마련인데, 이 경우는 기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고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할일 보다는 보여주는 것에다 조율을 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도장으로 찍고만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에 반하여 당연히 감상용의 작품으로 자리를 확보하게한 것이다. 그래서 古岩式의 전각예술이 탄생한 것이라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고암 선생의 개성이고, 실천적인 주창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地水火風’이라고 題를 한 작품의 성격은 찍는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찍을 수 있고, 더러는 찍었고, 그리고 보게 하는 설치가 바로 고암의 주창내용 가운데 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평면미술의 판화형식을 빌린 양식의 작품이다. ‘三足烏’라든가, ‘山水’와 같은 것인데, 고암은 이 외에도 碑石의 篆刻藝術化를 비롯하여 상업용 간판의 전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하였고, 그것은 실제로 현실에 수용이 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변이현상에 대한 연출력은 단순하게 찍히는 것에만 국한시키는 전각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양식의 새로운 변화현상인 것이다. 처음에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더러 의아해 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의아해 하던 視覺들은 차츰 긍정적인 쪽으로 이해의 물꼬를 트게되고, 드디어는 객관적인 인식으로 까지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고암 선생의 등장이 있기 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TV드라마의 제목이 새김질의 형식에 의하여 안방에 안내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王과 妃’에서였다. 뿐만이 아니고, 명언가구의 揷畵役割도 함께 한다. 전철역의 풍경소리에 고암 선생의 전각작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를 하고 접근이 가능한, 그래서 즐기게 되는 예술, 예술가만의 예술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즐기면서 좋아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민족의 정통예술인 것이다. 고암 선생은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다양한 새김질을 하나로 모아서 총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고암 선생의 노력은 우리가 바르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암 선생의 새김질 예술은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너무나 쉽게 이루어낸다. 그것은 바로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가. 인디안들이 언제부터 살고 있었든가. 그와 같이 고암 선생의 전각도 처음부터 새김질의 영역에 있었다. 양식을 고집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암 선생이 저지르고 있는 새김질의 美術品變移現狀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다만 고암 선생이 접근하기 전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래서 전각예술은 더욱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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